지적장애 1급 딸 김민영 씨가 집을 나간 지 두 달이나 되었다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약간 체념한 듯한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갈만한 곳을 떠올려보라고 했더니 “아마 서울역 쪽에 있을 거예요.”하는 것이다. 부모와 사는 20대 초반의 여성장애인이 왜 서울역에 가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수학교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통제가 안 돼요. 성인이 돼서 부모도 법적으로 아무 제지를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자꾸 법을 탓하셨다. 그러고 나서 충격적인 … [Read more...] about “평생 스마트폰이 미울 것 같습니다.”
사회
삶의 기본을 박탈하는 사회 ‘나, 다니엘 블레이크’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영화 읽기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다. 사회 안에는 더 쓸모 있게 여겨지는 존재들이 있다. 더 머리가 좋고, 더 건강하고, 더 체제에 잘 복종하여 사회가 선호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만이 쓸모 있는 존재는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쓸모의 자리가 있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인도 혼자 남겨진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며 보살피는 일을 할 수 있다. 홀로 지내는 아이에게, 또 노인에게 서로는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인지 이 사회에서는 … [Read more...] about 삶의 기본을 박탈하는 사회 ‘나, 다니엘 블레이크’
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1997년 8월 30일 파리의 어느 지하도로에서 영국의 전(前)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했다. 사인은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였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다이애나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해 그녀의 나이는 겨우 서른일곱 살이었다. 당시 다이애나와 그녀의 애인 이집트의 재벌 2세 모디 알 파에드는 황색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몰려드는 파파라치를 따돌리고자 다이애나를 태운 자동차는 파리 시내를 질주했고, 결국 터널 벽을 들이박는 참사로 … [Read more...] about 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명확하게 말하자: 오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주세요. 물은 반만 넣어 주세요." "손님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한가득하다.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요." "진하게 달라고 하신거 아닌가요?" "아뇨. 그냥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만 했는데요." "그러면 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샷을 3개 넣었어요." "저는 진하게 달라고 말한 적 없고요,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 했잖아요." 직원은 구시렁거린다. "그게 그거지, 까탈스럽긴." "이봐요. 당신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당신 … [Read more...] about 명확하게 말하자: 오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남자는 왜 여자보다 일찍 죽을까?: 유해한 남성성의 건강 비용
“남자들은 별로 잘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이고 죽으라면서 그들을 전쟁터에 보냅니다. 그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고속도로 한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고 얼마 안 있어 심장 마비로 죽고, 남자답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간과 폐의 질병으로 죽고, 대략 여성들보다 네 배 많은 비율로 자살을 하고, 대개 여성들보다 세 배 많은 비율로 살인의 희생자가 되며(주로 다른 남자들의 손에), 그 결과 여성들보다 약 8년 덜 … [Read more...] about 남자는 왜 여자보다 일찍 죽을까?: 유해한 남성성의 건강 비용
나의 편견과 마주하기
나는 편견이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 편견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다 GRIMZA 프로젝트와 함께 작업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던 편견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편견은 누군가의 괴로움을 지속시키고 누군가의 생계를 가로막을 것이고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릴 것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마주하자 나의 편견과 원문 … [Read more...] about 나의 편견과 마주하기
공해와의 전쟁에서 승기 잡은 중국
※ 본글은 뉴욕타임스의 「Four Years After Declaring War on Pollution, China Is Winning」을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빈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치렀던 것처럼 공해와의 전쟁을 단호히 선포합니다." 지난 2014년 3월 4일,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모인 공산당 대의원 3천여 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영 TV로 보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이들 앞에서 실로 담대한 선전포고를 한 … [Read more...] about 공해와의 전쟁에서 승기 잡은 중국
지방소멸이 도시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죠?
제 고향은 남해군입니다. 고향에 집이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비어있습니다. 논도 있습니다만 이웃 어른이 부치고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던 밭은 방치한 지 오래되어 사라졌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는 이제 아이나 젊은이가 아예 없습니다. 그나마 젊은 사람이 70대고 나머지는 모두 80대 이상입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우리 집처럼 대부분 빈집이 될 겁니다. 이웃 마을도 대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 남해군 인구는 10만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만 … [Read more...] about 지방소멸이 도시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죠?
한국교회는 어쩌다 ‘정의’를 외면하게 됐나
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거룩한 신을 믿는 종교인이나 성직자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가치관을 가졌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상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심심찮게 드러나는 교회와 기독교인의 행태를 보면 기대와는 정반대 모습을 볼 수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진리를 믿고 따른다는 종교인이 도리어 명백한 불의와 악의 편을 들며 정직과 진실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당황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나 또한 몇 년 전 내가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가 … [Read more...] about 한국교회는 어쩌다 ‘정의’를 외면하게 됐나
애도 받지 못하는 존재들
자살한 사람들의 부고 기사를 매일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작가님이 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의 죽음에 모두가 애도의 물결을 이룰 때도, 작가님은 꿋꿋하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어제도 본 것 같고, 한 달 전에도 본 것만 같은 언뜻 비슷해 보이는 삶과 죽음의 모습. 그들은 대개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지역, 성별, 나이, 직업, 자살의 이유가 짤막하게 간추려져서 나올 뿐이다. 신문 부고란 몇 줄의 기사로 한 사람의 삶이 정리되는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된 나에게 차곡차곡 그들의 … [Read more...] about 애도 받지 못하는 존재들